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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고든은 상당한 정도의 사회성을 드러내는 감독이다. 물론 그러한 성향은 패러디와 과잉을 일삼던 초기작보다는, [개미들의 왕]으로 돌아온 이후의 모습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평이한 스토리 전개에 H.P.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애정만으로 치부되는 작은 작품, 마스터즈 오브 호러 1시즌의 [마녀의 집] 역시 내가 보기엔 그런 부류의 영화다. [마녀의 집]의 내용은 정말 단순하다. 한 대학원생이 가장 싼 가격의 집을 구하는데, 그 집은 차원이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마녀가 출몰하여 그 집에 기거하는 사람들을 장악해버린다는 것. 그런데 이 단순한 스토리에는 미국 안에 존재하는 빈곤과 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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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경제적 이유로 허름한 집을 얻게 된다. 그 집에서 그는 마녀를 만난다. 마녀가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에 출몰한다는 점은 빈곤과 범죄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실을 잘 반영한다. 흑인의 예를 들어보자. 흑인이 확률적으로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주장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그 범죄는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누구나 알 수 있듯 그 근원은 빈곤이다. 범죄의 온상 슬럼가는 부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마녀가 차원이 다른 공간에 거주한다는 것은, 정작 범죄를 불러일으키는 자는 빈곤과 거리가 먼 계급에 속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이 역시 현실을 잘 반영한다. 어마어마한 악인은 대체로 숨어 있을 뿐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에게 악을 사주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그러한 악행의 책임 논란에서도 그 모습을 숨기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그러한데 마녀의 명령에 의해 가해자가 되는 이도 세입자요, 그 악행에 의해 피해를 입는 이도 세입자다. 물론 가장 큰 이익을 챙기는 것은 마녀다. (집주인은 자기의 집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눈꼽만큼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특히 마녀의 오컬트적 마법이 최첨단의 과학과 동일시되는 순간, 마녀는 그 의미를 완전히 탈바꿈한다. 마녀는 타인의 희생을 취하고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는 권력층이요, 또한 최첨단의 학문으로 무장한 식자(아마도 배운자가 권력을 가질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이기도 하다.
이 집에는 악덕주인과 경제적 소수인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고 경제적 소수를 상징할 수 있는 자는 기괴한 느낌의 노인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이 노인은 마녀의 정체를 알고 있고, 한 때 마녀의 시종이 되어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죽인 자며, 동시에 끊임없이 회개하는 보통의 영혼을 소유한 자다. 그는 새로이 마녀의 시종이 될 이에게 마녀에 대해 경고하고, 그녀를 보았다면 지체하지 말고 도망가라고 조언한다. 따지고 보면 마녀에게서 도망가라던 노인의 충고란, 가난하면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답니다라는 일종의 서글픈 탄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탄식은 흔히 무시되는 종류의 것이다. 특히 가난을 불운의 결과라기보다는 게으름의 결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여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팽배한 미국에서라면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백인 주인공은 그 조언을 무시한다. 그리고 그는 마녀에게 대항하려고 마음 먹는다. 만약 범죄가 단순히 개인의 속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며 또한 전력을 다해 마녀에게 대항하려는 대학원생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이길 수 없다. 그는 마녀의 뜻대로 아이를 살해하고 만다. (왜 하필 아이가 고통을 당합니까에 대해서는 답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이 하수상하면 가장 괴로운건 아이들이니까.) 즉, 그 집에 기거하는 이들에게 범죄는 불가항력적인 무엇이었던 것이다. 백인인들, 식자인들, 누구든 간에 마녀의 명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니 범죄를 저지르는 이에 대한 스튜어트 고든의 견해란 조금은 동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들의 범죄보다는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개별사안이라면 반드시 범죄에 대해 동정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그래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범죄라면 그 근원을 따져보는게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그리고 빈곤에서 범죄가 나온다면, 범죄를 처벌하는 것과는 별개로 빈곤부터 다스려라. 아마도 스튜어트 고든의 진심은 여기에 놓여 있을 것이다. [마녀의 집]을 대단한 작품이라고 치켜세우기는 모자람이 있는게 사실이지만, 여러모로 [스턱]의 전주곡으로는 충분한 느낌이다.
2009. 6. Argento.
덧 1. [마녀의 집]은 [지옥인간] 인트로를 60분 버전으로 찍은 것이다. 누구도 믿지 않는 그러나 실제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의해, 최고의 학벌을 가진 이들이 정신병원으로 끌려간다. 또한 처음 집을 대면할 때의 카메라는, 동심을 잃은 이들을 인형으로 만든 [돌스]의 외딴 집 정경과 상당히 흡사하다.
덧 2. 뭐 다 떠나서 죽음의 책 하나만 나와도 좋아할 사람이 있을 듯. 아기자기한 구석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평작 수준이다.
덧 3. 사실 [마스터즈 오브 호러]라는 프로젝트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1시즌의 절반 정도밖에 보지 못했었다. 그건 다 DVD가 나오다가 만 탓인데(이빨 빠진 컬렉션이 싫어서 국내출시본을 안 사고 버티다가, 절판이래서 그냥 샀다), 어쨌거나 마스터즈 오브 호러의 DVD에는 짧은 감독 다큐가 실려있다. [마녀의 집] 다큐의 가장 큰 수확은 스튜어트 고든이 거의 다리오 아르젠토 급의 겁장이 호러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는거다. 공포영화 감독으로서 겁장이라는 기질은 하늘의 축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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