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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2 용서받지 못한 자 (4)
간만에 본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캐릭터는 얼굴에 칼질을 당한 창녀였다. 그녀는 손님이었던 카우보이에게 얼굴을 난도질 당한 것도 모자라, 보안관에 의해 (돈을 벌어다주는) 말과 같은 존재로 규정받기까지에 이른다. 법적으로!! 그래서 범죄자들은 벌금형(말로 갚아라!)에 처해진다. 여기에 반발한 동료창녀들은 그녀의 복수라는 목적으로, 또한 같은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목적으로 현상금을 모아 킬러를 고용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손해를 입은 여인은 결코 주도적이지 않다는거다.

장면이 바뀐다. 보안관이 명령한 5필의 말을 포주에게 주러 온 카우보이들은 그 외에 말 한 마리를 더 가지고 온다. 포주는 그 말도 자신이 끌고 가려고 하지만 젊은 카우보이는 그를 저지하며, 가져온 것 중 가장 좋은 이 한 필의 말은 얼굴에 상처를 입은 여인에게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죄를 지은 일당 중 적어도 한 명(직접 상해를 입힌 자는 아니다)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안관이 명령한 벌금은 법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추가적인 지출은 반성의 의미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장면에서 얼굴을 상한 여인은 심지어 감동한 듯한 표정까지 내비친다. 하지만 이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

이 예기치 못한 카우보이의 반응에 모두는 잠시 할 말을 잊는다. 그리고 조금의 정적이 흐른 후 창녀의 동료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말을 가져가라고. 이는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반성만으로 과거는 변하지 않으며, 따라서 때로 용서는 불가능하다.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일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란 반성 뿐이라는 사실이지만. 게다가 이미 늦기도 했다. 창녀들은 킬러들에게 의뢰까지 해둔터다. 즉, 그 젊은 카우보이는 용서받지 못했다. 오히려 영화 속에서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죄로부터 한 발 짝 떨어지고자 하는 이가 먼저 죽는다. 자신은 못하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려던 모건 프리먼의 죽음 역시 그런 맥락에 놓여있다.

이 때도 얼굴에 난도질 당한 여인은 그에게 돌을 던지지 않는다. 동시에 그녀는 동료들을 말리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한 발 짝 떨어져서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녀는 복수를 원했을까? 하나의 사건, 그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반응들과 드러나는 모순, 마을을 피바람으로 물들이는 예정된 그러나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결과를 향해 영화가 달려가는 동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란 실은 외부인에 그치는게 아닐까?

물론 누군가가 당한 불의에 대항하는 것이 사회를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피해받은 이가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를 파고 든는 것이 꼭 옳은 것일까? 실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나도 모르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정치적으로 끝없이 파고들면, 누군가에게는 어딘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상당히 폭넓은(사안을 넓게 두면 넓게 둘수록 답을 내리기 어렵다)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란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캐릭터에는 이해와 납득의 여지가 있으며, 온전한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행동이 왜 그러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인간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어쨌거나 피해를 입은 여인이 직접 나섰더라면 이런 혼란은 없었을텐데(동시에 이런 울림도 없었을지 모른다)라며 푸념을 한 번 늘어놓아본다. 만약 나처럼 그녀를 좀 더 주도적인 위치에 두고 영화를 감상하고자 하는 이가 계시다면, 자신의 문제는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라던 [체인질링]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 [체인질링]에서는 가장 중요한 싸움만큼은 온전히 졸리의 것이었다.

2009. 7. Argento.


덧 1. [용서받지 못한 자]는 잘 만들어진 영화다. 캐릭터들은 언제나처럼 풍부하고(캐릭터에 대한 설명들도 효율적으로 세세하게 이루어져 있다. 영국인 킬러와 형편없는 집짓기를 통해 보안관을 설명하는 방식을 보라), 세상에 대한 묘사나 해석 역시 깊이가 있다. 장르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일 뿐더러, 서부신화의 허울을 벗겨내고 있기도 한 작품이다. 사실 전설적 영웅이란 거짓과 소문들로 부풀려진, 술취한 광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덧 2. 그럼에도 영화의 엔딩에서 뿜어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우라는 대단하다. 영웅신화의 해체를 추구하는 작품에서 그려낸 주인공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멋진걸 어떡하나. 아직도 봐야할 그의 영화가 많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내게는 이 작품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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