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할 것 없이 나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이 상당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복수가 통쾌하다는 평들에는 일부 밖에 공감되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의 가장 멋진 장면은 된장을 뿌리는 장면이었지만) 사실 이 영화의 복수는 주가 아닐 뿐더러, 복수와 그에 뒤따르는 결말은 상당히 불쾌한 구석마저도 가지고 있다. 아래는 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어 몇 자 적어본 것이다.
어떤 평론가는 김복남이 죽지 않았으면 별을 한 개 더 줬을 것(정확한지 모르겠는데)이라고 말했는데, 나 역시도 그렇다. 단지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철저한 복수극을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러닝타임 내내 복수라는 쾌감을 느끼게 하던 영화는, 복남의 죽음으로 인해 갑자기 그 쾌감으로부터 관객을 괴리시킨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움은 애당초 감독의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섬을 떠나는 순간 그녀에게 예정된 것은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섬에서 내보냈기 때문이다.
좀 더 설명하자. 복수극의 관점에서라면 [김복남]은 상당히 좌절스러운 영화다. 그녀의 복수가 (완전하지는 못했다고 하나) 완결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섬이 극히 제한된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거대 도시라면? 얘기가 다르다. 도시에서는 사건에 책임이 있는 방관자들을 가려낼 수도 없을 뿐더러,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수도 없이 많을 방관자들에게 일일이 심판의 낫을 들이밀 수도 없다. 그러니 방관자를 포함하는 그녀의 가차없는 복수란 섬을 떠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김복남이 살아갔던 섬이 분명히 우리 사회를 축소해놓은 것임은 명확하다. 따라서 섬에서 나간다한들,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그녀는 당하면서 살든지, 아니면 반사회장애자가 될 것(최악의 경우에는 죽을 것)이다. 섬 밖에서 최초로 만난 것이 친절 혹은 선의라고 할지라도, 복남이 처음 행하고자 한 것은 복수의 완결 아니었던가! (그것을 위해서라면 죄없는 파출소 하나 박살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것 같아보였다) 또한 만약 이 영화가 방관자들의 책임을 지적한다는 것에 공감한다면, 그에 대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보잘 것 없다. 그들에게 어떠한 강제를 가하기보다는(그런 수단이 있겠는가?) 방관자 스스로의 변화를 촉구하는 정도에서 그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섬으로부터 나가는 순간, 이 영화의 주는 복수로부터 벗어난다. 결과적으로 복수의 주체로서의 복남이 아니라, 단지 친구의 각성을 위한 소재로서의 복남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주인공은 역시 복남이 아니라, 이 모든 사건을 지켜본 복남의 친구가 된다. 이건 당연하다. 전말을 알고 있고, 사건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뿐이므로.
어쨌거나 복남의 친구는 이 사건을 통해 아주 작은, 그러나 유일한 희망을 기대하게 한다. 무책임한 방관자로부터(그 이유가 무엇이었든간에)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역시 복남이 아니라, 복남의 친구와 처지가 같다. 안전한 곳에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아주 조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화란, 특히 고통스러운 영화란, 대개 이런 법이다.
더 나아가 나는 김복남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상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즉, 이 살인사건 전체가 단지 친구의 상상 - 혹은 내면의 투쟁 - 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석한다는 의미이다. (이 편이 양심의 가책이 적다) 영화의 결말부, 집에 돌아와 누운 친구의 모습은 섬의 전경으로 오버랩되는데, 그 장면은 나의 해석(섬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실은 친구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즉,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자신에게 가해질 신체적 위협과 양심 사이에서 격투를 벌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영화였던 것이다. 그러니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뭍(친구의 세계)으로 나올 수 없다. 가상의 존재인 김복남이, 가상의 공간에서 나온다면, 당연히 소멸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장철수, 한국, 2010.
a.k.a. Bedevilled
덧. 이 영화의 핏빛 복수가 태양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듯, 나는 이 영화의 끝도 태양과의 대화로 끝났으면 했다. 섬에서 탈출하려는 친구까지 모조리 죽여버리고(방관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게 영화의 의도라면 친구도 죄인이다. 그러니 그녀도 죽어야 한다), 그 선착장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끝났으면 했다는 것이다. 하늘이 과연 복수를 단행한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그 말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그냥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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