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크로넨버그가 보여준 장르에 대한 집착과 당시 호러 장르의 인기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주류에 쉽사리 안착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에드워드 오닐(옥스퍼드 세계영화사 중)은 말했는데 아마도 사실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공포영화하면 흔히 생각날만한 영화를 찍었다는 것은 아니다. 공포영화로 알려졌던 크로넨버그의 영화들은, 장르영화라기보다는 작가적이고 컬트적인 영화라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물론 초기의 크로넨버그는 언더그라운드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영화를 찍을 자금 때문에 고생한건 아니었다. 그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캐나다 정부는 공공자금을 투자함으로써 민간 분야의 영화 제작을 촉진하고자 캐나다 영화 개발 협회(CFDC : Canada Film Development Corporation)를 설립했는데, 그 대표적인 수혜자가 크로넨버그였고 그는 높은 수익으로 화답했다.
(조금 덧붙이자면 이 당시 미국 회사들은 캐나다 정부의 영화 산업에 대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많은 영화들을 캐나다에서 만들기도 했다. 예전에 누군가가 캐나다에서 공포영화가 많이 만들어진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질문에 비해 답은 늘 싱겁다. 돈 문제다. 좀 더 정확하게는 세금을 피해 캐나다로 도피한 것! 합작을 통해 보조금 혜택을 보거나!)
그러나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시각적으로 상당히 혐오스러웠기 때문에, 높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돈으로 저런 영화에 투자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반발을 가져왔다. (우리 나라였다면 더 했을 듯. 오! 여성가족부!) 이러한 반발이 아니었다면 그는 헐리웃과의 공생(그는 스스로 이것을 악마와의 거래라고 표현한 바 있다)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모든 크로넨버그의 작품에 CFDC가 관여했는데, [비디오드롬] 역시 CFDC가 부분적으로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스캐너스]의 성공 이후 유니버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비디오드롬]은 지금은 크로넨버그의 공식적인 첫 걸작(나는 크로넨버그 영화 중에서는 단 한 편도 실망한 영화가 없다)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영화 자체야 워낙 유명하니 딱히 말하지 않아도 될 듯.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이상의 자극이 주어진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을, 폭력과 섹슈얼리티가 가득한 이미지로 풀어낸 작품이라고만 설명해두자.
얼마전 블루레이를 감상하다보니 재미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더라. 금단의 방에서 두 흑인이 여인을 고문하는 영화 속의장면을 본 막스(제임스 우즈 분)가 묻는다. "플롯이 뭐야? 저 여자는 왜 여기에 왔고, 저 흑인들은 누구야?" 그러자 할란(피터 드보르스키 분)이 대답한다. "플롯은 없어. 그냥 처음부터 저기서 시작해서, 한 시간 동안 저런걸 보여줘."
그러자 막스가 감탄한다. "너무 훌륭하군. 제작비도 전혀 들지 않고, 놀랄 정도로 사실적이야."
어쩌면 크로넨버그는 호러영화의 미래가 그렇게 될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막스는 다른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비디오드롬이 넥스트 씽이 될거라고 생각해."
무의미한 질문이지만 그가 정말 그렇게 예견했던게 맞다면, 그의 예언은 맞았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점장이의 예언처럼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의미 없는 고문영화가 득세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팬들은 이야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에.
Videodrome, David Cronnenberg, 1983, Canada.
덧. 크라이테리언에서 발매된 블루레이에는 영화 속에서 사용된 소프트코어 포르노와 스너프 영상들의 촬영장면이 담겨 있다. 그냥 어떤 걸 사용할까라고 생각하며 여러 개를 찍어두었다고 하는데, 소프트코어 포르노에 나온 여주인공의 땋은 머리로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그 영화에서 그녀와 관계를 가진 두 명의 사무라이의 손으로)도 있어 피식했다. 가장 좋은 서플먼트는 그가 2000년에 만든 단편 [카메라]가 담겨 있다는 것. (검색하다보니 무명시절에 만든 어쩌고라고 뜨기도 하는데, 2000년이면 크로넨버그는 깐느에서 상도 받고 난 다음이다. 세상에!) 솔직히 내 경우는 코멘터리보다는 단편이 들어 있는게 수 십 배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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