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ay] 죽음과 매장(Dead and Buried) 컬렉션

게리 셔먼의 [죽음과 매장]을 처음 볼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첫 살해씬의 강렬함과 마지막 반전 정도일 것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아주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그 두 장면이 가진 힘이 두드러지는건 사실이기도 하고. 영화는 외지인에 대한 강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친 평온한 시골 사람들이라는 진부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주요 주제인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기억에 남는 첫 살해씬. 해안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남자에게 여인 - [사관과 신사]에 나왔던 리사 브로운트는 이 장면에서 꽤 섹시한 이미지를 뽐낸다 - 이 다가온다. 자신도 모델이 될 수 있겠냐며 은근한 수작질을 걸던 여인네. 드디어 사진작가에게 가슴을 드러내는 등 노골적인 유혹질로 보는 이를 폭발 직전으로 달구어놓더니만, 갑작스레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들이닥치더니 사진작가를 구타한 후 불로 태워죽인다. (섹스씬을 기대하다가 깜짝 놀라버렸다) 뜬금없게도!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그들은 죽음의 순간을 흡사 영화처럼 촬영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의 전개도 비슷하다. 첫 살해씬과 비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련의 살인사건들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계속된다(역시 영화처럼 촬영한다).

거듭되는 살인사건에 대해 마을의 보안관은 의혹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임무대로 문제 해결에 나선다. 수사는 잘 진척되지 않는다. 게다가 계속 난관에 부딪힌다. 수사 도중 보안관은 죽임을 당한 사람과 자신의 아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내에게 사실에 대해 질문하자 아내는 거짓으로 일관한다. 상식 수준에서 초자연적인 성격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이상한 일은 계속된다. 알고보니 아내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흑마술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장의사에게 맡겨놓은 죽은 이의 시체는 사라진다. 업무중 실수로 누군가를 차로 치게 되는데, 차에 남긴 그의 세포조직은 살아 있는 자의 것이 아니란다. 헐~

범인이 최초에 밝혀졌듯 영화가 감추어둔 비밀이란 누가 범인인가에 대한게 아니다. 대신 영화는 어째서 마을 사람들이 그런 짓을 벌이는가, 어째서 그들은 죽음의 장면을 촬영하는가, 더 근원적으로는 이 마을은 어떤 사연을 감추고 있는가에 대해 관객을 궁금하게 만든다. 이러한 비밀을 밝힘에 있어 영화가 차근차근 포석을 깔아두는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초자연적인 나머지 장르에 익숙한 관객이 아니라면 사실관계를 추론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르지 않나 싶다. 대신 모든 비밀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최후의 한 방 반전이다. 물론 수많은 반전영화의 러쉬에 익숙해진 요즘 관객이라면 시큰둥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 영화의 반전은 감정적으로나 서사적으로 힘도 있고, 무척 깔끔하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내용에 대해서는 더 밝히면 재미가 없을테니, 여기까지만. 하지만 팁을 좀 드리자면 영화는 정통 좀비물보다는 [스텝포드 와이프]나 [죽어야 사는 여자]를 적당히 섞어놓은 느낌에 가깝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가 특색 있는 좀비물이자, 동시에 (국내에서는 크게 소개되지 않았던 고로) 꽤 저평가된 좀비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와 몇몇 임팩트 있는 살해씬 (중간에 나오는 일가족의 비극도 임팩트가 있다. 어두운 밤 비춰지는 빛은 구원이라기보다는, 부자연스러운 위험에 더 가깝기 쉽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외에 이 영화에 참여한 몇몇 인물들의 업적을 살펴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이다. 먼저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야심가를 만나 비로소 이름을 날리게 되었던 스탠 윈스턴이 참여한 특수효과는 효과적인 동시에 결코 오버스럽지 않으며, 후에 [에일리언]의 각본가이자 [바탈리언]을 감독하게 된 댄 오배논의 각본은 말쑥하다 못해 빛이 난다. 동시에 호러팬에게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로버트 잉글런드의 민낯을 볼 수 있는 몇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고. 꽤 괜찮은 분위기의, 추천할만한 작품이다.


Dead & Buried, Gary Sherman, U.S.A. 1981.



줄세우지말 것 - 편집광(The collector) 공포영화

한 남자가 온통 초록 배경인 공간에서 나비를 잡고 있다. 맑은 음악과 함께 한없이 느긋하고 평온한 템포. 그러다가 그는 'for sales'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한 집을 발견하고는 그 집안으로 들어가더니만 음산한 지하실을 훑어보는데, 갑자기 예사롭지 않은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내가 이 집을 산 것은 이 집이 한적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이었다"는 독백을 던진 후 곧바로 한 여인을 훔쳐보는 장면으로 전환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밝힌다.

사실 곤충채집을 하고 있는 남자로부터 시작된 영화의 첫 장면은 정말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하나의 장면이 향후 관객의 태도를 완전히 결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나비수집이라는 그의 취미(혹은 직업, 영화 상에서 그는 스스로를 곤충학자라고 소개한다)와 여인 납치라는 객관적 사실 사이에 그 어떤 필연적 인과관계는 없지만, 그 두 정보를 동시에 알고 있는 이라면 대개의 경우 (영화 속의 여주인공처럼) 심정적으로 그에게 싸이코라는 명칭을 부여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여인을 납치한 것에 그 어떤 이유가 있을지라도(그 이유가 옹호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단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확한 이유를 인지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그치게 될 뿐 온전한 이유는 그 개인의 성향 탓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보자면 이 영화는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영화가 된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만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아깝다. 이 영화는 도발적인 논쟁을 발생시킬 수 있을 주제들을 은근히 품고 있다.

여인을 납치한 남자는 처음 단계에서 여인을 죽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는 사회에 부적응한 자로 납치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와 한 순간의 대화도 이어갈 자신이 없기에,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그녀를 납치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다. 나와 말을 하자는 것. 그러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물론 자신이 여자를 잡아두었다는 자체가 치명적 위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는 물리적 의미에서 여인에게 어떠한 위협도 행하지 않는다. 모든 필요를 충족해주고, 부족한 것에 대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가끔씩 흔들리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그런 자세는 유지된다. 상대를 유혹하는 것도, 또한 해하려고 하는 것도 달아나고자 하는 여인일 뿐, 붙잡아두려는 남자의 행동은 아니다. 그 둘의 기묘하고 뒤틀린 관계로부터 때때로 힘의 역전이, 그리고 긴장감이 팽팽하게 발생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조금 의아한 점이 있다. 신사적이고, 돈도 많고(처음부터 많은건 아니었다. 복권에 당첨되었을 뿐), 외모도 잘 생긴 남자가 어째서 납치라는 극단적 방법을 쓰지 않고서는 그녀와 말조차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저 스쳐가기 쉽지만, 사실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이 부분으로부터 나온다. 중요한 힌트는 두 번 주어진다. 첫 번째는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주인공의 모습, 그리고 두 번째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감상으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논쟁이다. 첫 장면은 그의 범행은 관계에 대한 공포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공포의 근원을 밝혀준다.

자신과 말을 한다면 한 달의 기간이 지난 후 여인을 풀어주겠다는 남자의 이야기가 있은 후, 여인은 남자와의 대화를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호밀밭의 파수꾼』을 소개한다. 그리고 아마도 남자는 그것을 읽은 듯 하다(남자가 책읽는 장면은 나오지 않으니까).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체 이게 왜 좋은건지 모르겠다고. 소설 속의 주인공은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 부모들도 돈이 많고 그 어떤 문제도 없다고. 즉, 그가 그렇게 행동할 이유가 없다고. 그러면서 여인에게 묻는다. 이 소설이 정말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그에 대해 여인은 정론을 늘어놓는다. 그의 비뚤어진 성격이 매력이며, 그의 모습이 얼마나 우리들과 같은지에 대해 설명한다. 네가 그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 작품의 좋은 점을 캐치하지 못하는거라며 타박한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건 지금 여인의 앞에 있는 그 남자가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과 같다는 사실이다. 단, 비뚤어질만한 이유가 그에게 있었다는 것이 다를 뿐. 그리고 그 남자는 여인에게 가장 이해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논쟁은 이어진다. 남자는 피카소의 그림을 손에 들고 이건 멋진 작품이냐고 여인에게 묻는다. 가장 먼저 돌아온 여인의 대답. "예, 그건 피카소에요." 그러고는 또 정론이 이어진다. 별로라는 반박에 여인은 당신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거라며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여인이다. 여인이 남자의 나비콜렉션을 보고 보인 반응, 당신이 한 짓이 뭔지 알아요? 수많은 죽음이에요. 죽음이 좋은가요 등의 말을 되새겨 볼 여력이 그녀에게 있었더라면, 아마도 얼굴이 화끈거렸으리라. 사실 박물관을 방불케하는 나비콜렉션에 매력을 느낄 사람은 피카소의 그림에 빠져들 사람보다 결코 그 수가 작지 않다. 그게 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할 테고.

이에 대해 남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은 어떤 교수에게 들었기 때문에 그게 좋다고 얘기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게 당신과 당신 친구들을 우월하게 만들고, 나 같은 사람을 무시하며 제대로 대화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이 대사는 싸이코라고 치부되었던 한 남자가, 일종의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한 남자로 거듭나게 만드는 놀라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당신을 여기에 데려온건 정말 잘 한 일이었어. 그의 목적에서라면 당연하다. 남의 기준을 빌어 이야기하는 사람과 남의 기준으로부터 배제된 이가, 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소통할 가능성이란 전혀 없는 것이니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남자로부터 탈출을 결심한 여인은 삽자루로 그의 머리를 강타한다. 그의 피를 보고 겁에 질린 여인을 필사적으로 다시 지하실에 가두는 남자. 그는 여인을 남겨둔채 병원으로 떠난다. 이 장면도 재미있다. 여인은 남자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 타인을 가해한 것에 대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시에 남자가 죽으면 여인도 지하실에 갇혀 죽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으로 그가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다린다. 사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러할 것인데,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가 바로 그 다음 차례를 맞게 된다. 하나가 소외되어 그 집단으로부터 사라지면, 이제는 다른 기준으로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소외시키리라. 그걸 깨닫는건 늘 마지막 순간이다.

연쇄살인마에 대한 공포가 주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든 사람을 줄세우지 말라는 것이 [편집광]의 진정한 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편집광]에는 '사람을 줄세우는 행위'에 대한 반감이 여러모로 묻어난다. 줄을 세우면 세울수록, 세상은 더 각박해지는 법이다. 예를 들어 학문이란 보통 사람들의 실생활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 그래서 접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지식이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세우고, 소외받는 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반감 뒤로 [편집광]은 소외받은 누군가는 어떤 극단적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역시 드러낸다. 썩 괜찮은 작품이다.


The Collector, William Wyler, U.K./U.S.A. 1965.



[Bluray] The Living Dead at Manchester Morgue 컬렉션

제작자가 감독 호르헤 그라우(Jorge Grau)에게 "자네 공포영화 좋아하나?"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네,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또 물었습니다. "[살아난 시체들의 밤] 같은 영화 좋아하나?" 그러자 감독이 "네,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대화는 거기서 끝났어요. 왜냐하면 그 때 감독은 다른 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제작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만나자고. 만나고나서는 대뜸 시나리오 한 부를 던져 주었지요. "이거야말로 정말 [살아난 시체들의 밤] 같은 영화야, 자네 관심있나?" 


그렇게 시작된 작품이 한글 제목을 뭐라고 붙여야 할지 잘 모르겠을(개봉될 때마다 다른 제목이 붙는 바람에 무척 많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영화랍니다), [The Living Dead at Manchester Morgue]라는 작품입니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잠들어 있는 시체를 그대로 두어라'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Let Sleeping Corpses Lie]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 그리고 한국 최초의 좀비물 [괴시]가 대놓고 베낀 작품(두 작품 모두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으로 더 유명하게 된 좀비물일테죠. 그러니 이 작품이 [살아난 시체들의 밤]의 아류작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아류작이라고 해서 꼭 나쁜건 아니지요. 이 영화도 아주 좋아요. 으스스한 분위기나 긴장감 끌어내는 연출도 상당히 괜찮은데다가, 주제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변주가 이루어졌습니다.

대략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한 여인이 자신의 언니를 찾아가는 도중 어떤 남자의 오토바이를 고장나게 만들어 둘이 동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언니가 있는 그 한적한 시골은 벌레를 죽이기 위한 고주파음의 부작용으로 인해 죽은 시체들이 일어나 활보하는 장소였던거에요. 좀비의 공격으로 죽임을 당한 언니의 남편 때문에 사건(물론 누구도 믿지 않는 사건입니다)에 휘말린 두 남녀는 경찰과의 대립 속에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줄거리 하에서 서스펜스와 스펙터클을 잘 살려주고 있으며, 과학 발전의 위험함이나, 파시즘에 대한 부분도 살짝 곁들이며 영화의 맛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어떤 좀비물보다 통쾌한 결말과, 긴장 넘치는 납골당 장면, 하이라이트인 병원장면 등은 꽤 근사한 장면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이 영화의 좀비들은 지금 보기에는 약간은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잡하지도 않구요. 여기에는 이태리의 특수효과 장인 지아네토 데 로시가 지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호르헤 그라우의 작품이지만, 동시에 지아네토 데 로시의 첫번째 좀비물이라고 기억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얼마전 출시된 블루레이의 퀄리티가 상상한 이상이라 더욱 즐거운 감상이 되었지요. 블루레이의 퀄리티는 도저히 만들어진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저예산 영화라고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에요. 솔직히 제작사인 블루언더그라운드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영어자막이 있고, 지아네토 데 로시(특수분장), 호르헤 그라우(감독), 레이 러블락(주연배우) 등과의 인터뷰가 서플로 실려 있습니다. 공포영화 팬이라면 필견을 요하는 작품입니다. 


Non si deve profanare il sonno dei morti, Jorge Grau, Spain/Italy. 1974.

a.k.a. Let Sleeping Corpses Lie, U.S.A.
       The Living Dead at Manchester Morgue, U.K./U.S.A.
       Don't Open the Window, U.S.A.
       Do Not Speak Ill of the Dead, U.S.A.
       The Living Dead, U.K.
       Zombi 3, Italy. (풀치의 [좀비2] 개봉 이후 개봉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입니다.)


지아네토 데 로시 그외


"나는 세 명의 훌륭한 공포영화 감독과 일한 적이 있다. 호르헤 그라우, 루치오 풀치, 그리고 알렉산드르 아야가 그들이다." - Giannetto De Rossi (당연하겠지만 위 사진의 가운데 인물)

이태리의 분장전문가이자, 특수효과를 담당한 장인. 많은 필모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데이빗 린치의 [사구]를 포함하여 [아이언마스크], [드래곤하트], [람보3],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사노바] 등의 작품에 가담한 바 있다.

물론 장르팬에게는 풀치와 함께 했던 일련의 작품들로 유명하다. 다리오 아르젠토에게 세르지오 스티발레티가 있었다면, 풀치에게는 지아네토 데 로시가 있었다라는 말도 있었을 정도. 좀비를 불로 태우거나, 산으로 녹이는 등의 효과는 그의 전매특허였으며, 특히 좀비를 태우는 장면들은 풀치의 종교적 관점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였다. 풀치는 특히 [죽은 시체를 그대로 두어라]의 마지막 장면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때문에 [좀비2]에 지아네토 데 로시가 참여하게 되었을 확률이 높다.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좀비2]의 엔딩은 이 영화와 상당히 유사하거든.

 바닥에서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은, 시체물 뚝뚝 떨어뜨리며 온 몸에 벌레를 달고 다니던 루치오 풀치의 [좀비2]에서의 작업.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들의 시기가 시기이다보니, [엑스텐션]을 통해 그의 손길을 느낀 공포영화광이 가장 많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엑스텐션]으로 시체스에서 수상한 것이 유일한 수상경력이기도 하다.

필모그래피 보기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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